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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명예기자 윤경숙
-남산의 껌딱지
필자는 1989년 4월부터 남산의 껌딱지로 살고 있다.
남산의 껌딱지로 살면서 이사를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지금까지 살면서 여러번 이사를 생각했었지만 여전히 보류 중이다.
남산자락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가꾸지 않아도 되는 남산덕분에 1년 365일 새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거실에 앉아 사계절을 만끽하면서 일년 내내 새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은 남산이 주는 혜택이자 축복이다.
재수가 좋은 날은 새소리를 따라가 새를 사진에 담기도 한다.
남산에 오르는 날이 쌓이면서 이제는 새소리만 듣고도 무슨 새인지 알아맞힐 수 있는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현재 남산을 찾는 새들을 보면 약삭빠르게 날아다니는 박새, 몸은 숨긴 채 소리만 들리는 멧비둘기와 뻐꾸기, 산속에서 가장 시끄럽고 선명한 소리를 내는 딱다구리(오색딱다구리, 청딱다구리, 쇠딱다구리), 종종 물을 마시러 나오는 곤줄박이와 동고비, 가장 흔한 붉은 머리오목눈이(뱁새)와 직박구리, 산을 벌벌 떨게 하는 큰부리까마귀의 울음소리….남산이 살아 있다는 증거들이다.
아직 보지 못한 새(삼광조/긴꼬리딱새)가 있는데, 언젠가 보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가지고 남산을 오른다.
-남산의 옛이름
30년 넘게 남산자락에 살면서 남산이 걸어온 길과 남산의 이모저모를 살펴보았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거마산으로 신라시대 김유신장군이 울주군 두동면에 있었던 화랑훈련장에서 훈련을 하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묘소가 있다고 전해오는 ‘남산12봉’인 ‘은월봉’을 찾은 후 ‘월성’으로 돌아갈 때, 남산 밑으로 큰 말을 타고 지나갔다고 하여 클 거巨자와 말 마馬자를 합쳐 ‘거마산’이라 한다.
-남산12봉
남산12봉은 문수산에서 동쪽으로 뻗어내린 지맥으로 무거동, 삼호동, 옥동을 거쳐 신정동까지 뻗어 있는 12개의 봉우리를 통칭하는 지명이다.
12봉 중에서 1봉부터 9봉까지는 옥동 구역이고, 10봉, 11봉, 12봉은 신정동 구역이다.
-은월봉의 남산루
남산12봉 중에서 마지막 12봉은 은월봉(높이가 118.3m)이다.
朝鮮地誌資料에는 隱月山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달그림자가 이 봉우리에 숨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은월봉’이라는 한 시가 전해져 오는 걸 보면 예전에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웠을지를 짐작하게 한다.
현재 은월봉에는 남산루가 세워져 은월봉을 지키고 있다.
남산루에서 울산시가지와 태화강을 내려다 보는 순간 입에서는 감탄사가 저절로 터져나온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태화강과 태화강국가정원과 태화루가 한눈에 가득 담긴다.
-비내정
은월봉의 북쪽인 태화강 쪽을 내려다보는 벼랑에는 ‘비내봉飛來峰’이 있다.
현재는 비내봉에는 소박하고 작은 비내정이 자리를 잡고 있다.
남산을 찾는 사람들이 비내정을 그냥 지나쳐 가는 경우가 많은데, 잠시 짬을 내어 비내정에 앉았다가기를 추천한다.
네 명 정도는 거뜬히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고, 태화강을 내려다 보는 풍경이 일품이다.
-영원히 숨어버린 ‘장춘오藏春塢’
울산에 살면서, 신정동에 살면서, 매일 남산을 오르면서 ‘장춘오’를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또한 향토사연구위원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것이다.
‘藏春塢’는 신정1동 산1412번지 일대에 있었던 언덕바지를 말한다.
태화강 용금소인 황용연黃龍淵과 은월봉 사이의 둑으로 이 부근이 겨울에도 봄을 감추고 있는 언덕이라 하여 생긴 지명이며 울산 팔경의 하나였다.
고을 서쪽 수 리里 되는 곳에 큰 내가 남쪽으로 흐르다가 동쪽으로 꺾이어 바다로 들어간다.
그 내가 동쪽으로 꺾이는 곳에 물이 넓고 깊으니 이곳을 ‘황용연’이라 한다.
그 북쪽에 돌 깎은 듯이 벽처럼 섰으니 물이 다시 남쪽으로 구부러지고 동쪽으로 도는 곳에 산이 높다랗게 있어 물 남쪽에 버티고 섰는데,
이 곳에 이름이 있는 꽃들과 이름모를 풀, 해죽海竹과 산다山茶가 겨울에도 무성하다 하여 ‘장춘오’라 한다. -권근(1352-1409)태화루기 –
안타깝게도 지금은 이곳에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장춘오’는 영원히 숨어 버렸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아파트에 살고 있고, 영원히 숨어버린 ‘장춘오’를 찾아놓고 싶어 남산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장춘오’를 다시 세상밖으로
서두에도 말했듯이 남산자락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가꾸지 않아도 되는 남산이 있어서다.
늘 푸르름을 안겨주는 나무들과 1년 365일 귀호강을 시켜주는 온갖 새들이 나에게는 오랜 벗이나 다름없다.
하마터면 영원히 묻혀버릴 뻔한 ‘장춘오’, 영원히 숨어버렸던 ‘장춘오’를 다시 세상밖으로 끌어내 보려한다.
남산을 찾는 사람들에게 ‘장춘오’의 흔적을 전하고, 그 주변을 가꾸어 제2의 ‘장춘오’를 만들어 보고자 한다.
탐조반을 만들어 남산을 찾는 새들을 조사하고, 남산에 사는 식물(버섯류 포함)을 기록하고, 글짓기 대회도 개최하고 들이 좋아하는 남산을 가꾸고 살리어 다시 제2의 ‘장춘오’가 탄생되기를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