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도심 속의 불교 도량 정토사 이야기

남구 명예기자 배재록

정토사는 남구 옥동 울산공원묘원 입구에 위치한 대한불교 조계종 통도사 말사다. 도심에 묘원과 납골당이 있어 시민들이 많이 찾는 절이다. 정토(淨土)는 번뇌가 없는 깨끗한 세상이며, 속세가 혼탁하여 유토피아로 정화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정토사는 1988년 11월에 창건했으며 4,800평 대지에 대웅전, 지장전, 삼천불전, 설법전, 극락원, 삼성각, 대불삼보원, 극락원 이 있고 현재까지 산하 덕현 스님이 주지로 있는 서찰이다.
남산 제2봉인 삼호산자락의 ‘울산공원묘원’ 표지석이 반긴다. 남산은 삼호 먼데밭골에서 시작해 옥동, 신정동까지 12봉이다. 묘원은 조선의 명 풍수사 성지스님이 명당으로 정한 곳이다. 성지골 골짜기 왼편에 접어들자 수려한 산자락에 정토사가 터를 잡고 있다. 절 입구에는 미소 짓는 불상이 반겨주고, 울창한 숲의 품에 안긴 도심 속 사찰어서 마음을 엄숙하게 한다.

입구에는 불교 교설을 강의하는 설법전이 있는데 1997년 봄 에 이곳에서 개학한 정토불교대학은 7천여 졸업생을 배출했다. 불교개론 등 기초교리와 불교음악, 명상, 참선을 가르치는 교육 도량이며 대한불교조계종 신도전문교육기관으로 지정된 이래 140여 명의 조계종 포교사를 키워냈다. 그 공로로 덕진 주지스님이 조계종으로부터 포교의 공로상인 대상을 받았다.

청량한 종소리로 법음을 전하는 범종각 천정단청이 수려하다. 마치 종소리가 울려서 번뇌를 없애고 지혜가 생길 것만 같다. 지옥까지 들리라는 의미에서 종 입구가 아래로 향해있다. 종소리가 지하에 있는 영령에게까지 들려 고통을 벗겨 주지 싶다.
삼천불전 벽면에 대형 불화가 그려져 있다. 세상과 단절된 절에서 성찰하고 마음을 다스리는 부처가 된 기분이 들었다. 입구에 포대화상이 있는데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으며 배는 자루처럼 늘어져 괴상한 모습이다. 지팡이 끝에 자루를 메고 다녔으며 중생이 원하는 것을 내주기에 포대스님이라고 부른다. 길흉화복이나 날씨 등 예언을 잘해서 그 모양을 그려 공경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포대스님. 특히 중국 사람들은 재물을 가져다주는 포대스님이라 믿으며 숭상한다고 한다.

절 마당으로 접어들어 석굴암을 본뜬 대불삼보원 앞에 섰다. 부처로는 한국에서 가장 큰 7m 높이 석가모니 불상과 그 뒤로 10대 제자와 사대천왕이 반원으로 있어 불심을 자극한다.

마당의 사리탑에서 나온 불심이 정수리를 친다. 욕망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소멸시켜야 번뇌와 망상을 지울 수 있다. 번뇌를 쫓고 또 내쫓아 마음을 비워내야만 청정의 세계에 들 수 있다는데 그러지 못해 안타깝기만 하다. 그 불상은 수행하라는 묵직한 가르침을 준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위무를 받고 희망을 가졌는지 불상은 소상하게 알고 있을 것 같다.

부처님 진신사리 봉안 사사자 삼층석탑은 신라 연기조사가 화엄사에 조성한 탑을 축소해 만들었다. 암수 2쌍 사자가 연화대를 이고 있고, 가운데 승상(僧像)이 탑을 이고 있어 신령하다.

또 진신사리는 2001년 주지와 불자가 미안마 성지순례를 할 때 보디따다웅 대사원 큰스님으로부터 기증을 받아 봉안했다.

정토사에는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이색적인 감실 팔불상을 절벽에 모시고 있는데 불상이 채색되어 있어 특이하다.
또 인도의 마하보디사원 탑과 중국, 일본, 네팔, 인도, 미얀마, 태국, 인니에 있는 불탑 사진이 옆에 세워져 있어 이채롭다.
2016년 지진과 태풍 차바로 축대가 무너졌고 이를 복구하며 덕진 스님의 아이디어로 길이 35m, 높이 24m 2단 감실을 옹벽에 만들었으며, 8개국의 불상을 모셨다. 상단에는 과거, 현재, 미래의 부처님 삼세불을, 하단에는 오방불을 모신 것이다.

삼천불전에는 자그마치 삼천불상을 모시고 있다. 깨달음을 얻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사상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각각 천불씩 존재한다고 해서 3천불전이라 부른다.
사찰 안에는 아난과 가섭존자가 석가모니불을 좌우에서 모시고 있고 3,300불보살상이 있다. 석가의 사촌동생인 아난은 환희, 기쁨을 뜻하며, 가섭은 12세에 부모를 여의고 세속적 욕망의 허무함을 깨달아 아내와 함께 출가한 석가모니의 불제자다. 또 한글 대장경과 신수장경을 소장한 법보단이 있으며 불보, 법보, 승보가 한 공간에 모셔져 있는 흔하지 않는 전각이다.
2층은 스님들의 처소, 1층은 식당과 선원, 회관이 있다. 냉난방 시설이 된 법당은 24시간 개방하고 있으며 백일기도, 삼천배기도, 개인 특별기도 등을 하는 기도 성취도량 사찰이다.
또한 어린이 청소년 포교 중점도량으로 지정되어 포교전법 도량이기도 하다. 한편 공원묘지가 인접해 있어 지장전에서는 위폐를 봉안하고 49재 등 재 전문도량에도 충실하고 있으며, 수려한 산세 속에 위치해 있는 극락원에서 납골당을 운영해 조상을 부처님 품에 모시는 있다. 조상에 대한 효도를 할 수 있는 정토사 납골봉안당 극락원이 있는 사찰이다.
한문 불교서적을 한글화했고, 20만여 권 불교서적을 보급했다. 특히 조선전기 중추원사이며 대사헌을 역임한 권근이 ‘사서오경’과 ‘태극도설’에서 주요 개념을 뽑아 글과 그림으로 풀이한 성리학 입문서인 입학도설은 지방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경로효친과 천여만 원 이상 장학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각종 전시회와 요리 교실, 음악회 등을 개최하여 포교와 시민 친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또 ‘불교 천자문’ 등 저서를 발간했다.
진리를 알고 심신을 다지는 정토사. 괴로움과 어리석음을 벗고 지혜로서 선하게 사는 법을 배우고 의지하는 곳이다. 즉 불교를 배우고 실천하여 편안함을 얻는 방법을 가르치는 대한불교 조계종 신도전문 교육기관이기도 하다.

정토사를 창건하고 현재까지 주지로 계시는 덕진스님의 일대기가 잔잔한 감동을 준다. 1950년 하동 동촌마을에서 태어나 유년을 보냈다. 빈농이어서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세 동생을 돌봤다. 중학교를 마치고 부산에서 냉동·시계 일을 했으나 신통치 않아 3년 만에 귀향했지만 몸만 축났다. 21살부터는 약한 몸에 위가 탈이나 통증으로 고생했다. 하다못해 사천의 다솔사 북암으로 걸음 해 지극정성으로 예불을 올리고 불경을 읽었다. 그 후 통도사 산문을 열었고 통도사 방장이자 제15대 대한불교 조계종 종정에 추대된 중종 성파 대종사를 스승으로 모셨다. 부산 금화사, 보명사를 거처 수효사 주지로 있으며 정진 하고 있을 때 울산 공원묘원의 최한형 사장과 인연을 맺었다. 땅 1,000평을 시주받은 스님은 1988년 정토사를 세워 울산의 대표 도량으로 만들었다. 40년간 어린이법회를 거르지 않았고, 포교를 위해 문단에 등단한 덕진 스님은 시인이자 수필가이다. 시집은 ‘연꽃처럼 햇살처럼’, ‘문 없는 문을 열고’ 등 4권이다. ‘좋은 인연’, ‘동해 갯마을’, ‘절 주변 소나무’ 등 11곡이 작사 되어 정토사어울림합창단 등이 불러 음반으로 나올 예정이다.
덕진 스님은 사찰의 어려움 속에서도 어르신 무료급식소를 개원했고, 소외계층을 지원하는 ‘사단법인 참 좋은 세상’을 발족하는가 하면 조계종 포교원과 연계한 장학결연사업도 펼쳤다.

정토사를 떠나오는데 울산공원묘원에 잠들어계시는 영령들을 위무하는 목탁소리가 들려왔다. 삼호산 아래 명당에 자리 잡고 있는 정토사는 참선에든 듯 고요하고 평온하다.
대웅전에 봉안한 부처님의 자비가 공원묘원 영령들을 향하고 있는 듯 했다. 매일 듣는 정토사의 불경소리에 세뇌되어 영령들도 불심으로 가득한 부처가 되어 있지 싶다.
울산시민들과 함께 신행의 둥지요 전통문화를 향유해 왔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법인 ‘참 좋은 세상’ 등 20여개 봉사단체의 활약이 지대했다. 석가의 이념인 자비 선양을 위해 병원, 무료급식소, 사회복지관, 노인요양원, 장애인시설, 군부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특히 젊은 층 포교에 매진하고 있으며 SNS를 활용해 불교의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마음치유를 위한 참선 등 마인드 케어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불교를 이해하고 신행하고, 젊은이들이 인격을 갖추고 올곧게 살도록 가르침을 주고 있다.
다양한 신행 활동을 이끌며 정법 포교를 발원해 온 울산을 대표하는 포교 도량의 요람인 정토사의 번창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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