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사라져 가는 장생포 옛 마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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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구 명예기자 서선숙

파도 소리길

뱃고동 길

소금 바람길

우짠샘길

천지먼당길

욕쟁이 산길…….

여러분들은 장생포에 많이 가지죠?

최근에 장생포 문화창고가 개관하면서 다양한 볼거리와 거리음악회, 체험 등이 이루어지는 등

많은 사람이 찾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이름들을 아시나요?

저도 얼마 전까지도 장생포에 이런 지명이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파도 소리 길

이 길은 바다의 포구에서 들어와 마을의 끝자락에 있어 조용하고 한적합니다.

이곳에 살던 아이들에게는 이곳 앞바다에서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엄마가 불러주던 자장가였다고 합니다.

엄마가 섬 그늘에 굴 따러 가면

아기가 혼자 남아 집을 보다가

바다가 불러주는 자장노래에

팔 베고 스르르 잠이 듭니다.

바다의 포구에서 제일 먼 곳이라 잔잔하게 부딪히는 파도 소리와 살랑살랑 불어주는 바닷바람이

아기들에게 엄마의 자장가처럼 들려서 이런 이름이 생겼나 봅니다….

(파도 소리길의 잔잔한 바다)

파도 소리 길을 마주하는 마을 골목으로 접어들면 욕쟁이 산길이 장생포 초등학교를 지나 마을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옛 시절 아이들이 무서워 도망 다니던 욕쟁이 할머니가 살고 계셨답니다.

얼마나 무서운 할머니였으면 길이름까지 생겨났을까요?

“ 울면 저기 호랑이가 잡아간다.”

아이들에게는 호랑이보다 이곳 욕쟁이 할머니가 더 무서웠다고 합니다.

말 안 듣는 아이들에게 “욕쟁이 할머니 불러온다.”하고 소리치셨다고 하니까요.

파도소리길이 끝나면 뱃고동 길이 바로 이어집니다.

어떤가요?

이름만 들어도 이곳이 마을에서 제일 시끌벅적했었다는 느낌이 오지 않나요.

장생포 사람들에게 바다는 삶이요, 집이며, 친구이기도 하고 때론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곳 뱃고동 길에는

출항을 기다리는 배들이 예나 지금이나 빼곡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엔 고래를 실은 배들이라면

“ 뿌~~웅““ 뿌~~~웅“

뱃고동을 울리며 들어왔겠죠?

지금은 갖가지 화물과 기름을 실어 나르는 배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때의 뱃고동 소리는 지금은 사라졌네요. 종일 있어도 뱃고동 소리는 들리지 않고

지나는 배의 엔진 소리만 공허이 들릴 뿐….

길을 따라 늘어선 부식이라 적힌 가게들은 이곳에 얼마나 번창했나를 말해줍니다.

지금은 대부분 문이 닫히고 빈 가게만 이곳이 항구에 들어온 배의 선원들 먹거리를 마련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시끌벅적하던 뱃고동 길의 아성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간 게 왠지 씁쓸하네요.

뱃고동 길을 옆으로 소금 바람길이 이어집니다.

소금 바람길을 걷다 보면 바다의 짠 내와 소금기 머금은 바람이 얼굴에 닿습니다.

왜 소금 바람길인가 보니 바다 건너 반대편이 옛 염전이 자리했던 곳이랍니다.

”염포“

조선 시대 삼포 개항의 한 곳인 염포가 자리하고 있네요.

짠 소금 바람이 왜 불어오는지 아시겠죠!

뱃고동 길을 마주하고 좁은 골목의 오르막길을 오르다 뒤돌아보면 멀리 뱃고동 길과 항구의 모습이 내려다보입니다. 바다라는 이름이 무색하게도 파도 하나 치지 않는 것이 너무 평화롭기만 하네요.

마을의 꼭대기에 다다르면 골목 신명 신사라는 푯말이 나타납니다.

이름만 들어도 이곳이 일본건축물이라는 것을 알겠죠?

신명 신사는 일제가 이곳 장생포에 세운 신사입니다.

푯말을 지나 언덕 위로 널따란 초원이 펼쳐집니다.

천지먼당

장생포에서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

하늘 아래 첫 번째 산

장생포 사람들에게 이곳은 신성한 곳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달라고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고 피난처이기도 했답니다.

마을에 사는 주민들에겐 신성한 곳이지만

마을의 아이들에게는 이만한 놀이터도 없었겠죠?

깔깔거리며 뛰어놀던 아이들의 모습이 상상되시나요?

왁자지껄 소리치는 아이

숨바꼭질하는 아이 글쎄요 그 시절에도 이곳에 나무가 없었을까요?

이곳 천지먼당이 산이라고 하기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모습이 특이하네요!

그래서인지 하늘과 바로 맞닿아 있어 더 신성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이처럼 신성한 곳이기에 일본은 일찍이 이곳에 신사를 세웠던 거겠죠.

해방되고 마을 주민들에 의해 무너지고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의 증언으로 이곳에 신사가 세워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천지먼당에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마을에는 신위당이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고래 사당이라고도 불리는데요.

사당 뒤편으로 우람한 팽나무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나무의 가지에 고래 꼬리를 매달아 풍어를 기원했다고 합니다.

사당 앞길을 따라가면 우짠샘이라는 우물이 있습니다.

한창 호황이던 시절 포경선의 식수는 이곳에서 길어서 실었답니다.

우짠샘길을 따라가면 벚꽃길이 이어집니다.

이 길을 말구루마기길이라고도 부릅니다.

고래고기를 머리에 이고 울산 읍내로 팔러 가는 아낙네들

영화를 보려고 한 것 멋 부리고 나름 젊음을 즐기려 이 길을 지나던 마을의 젊은이들….

책가방과 도시락을 허리에 매고 뛰어가는 어린 학생들에게는

이 말고 누만 길은 울산의 시내와 이 바닷가어촌을 이어주는 통로였답니다.

짐이 많거나 비린내 나는 생선을 버스가 실어주지 않아서 짐값을 얼마 주고 마지막 투구로 마에 싣고 다니던 길이라

말구루마길이라 이름 지어 졌답니다.

말구루마길을 따라 가면 시내로 가던길과 천지먼당으로 가는 길이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장생포의 모든 길이 천지먼당으로 이어지네요.

(우짠샘길의 모습)
(장생포 말구루마길의 모습들)

장생포 문화마을, 고래박물관, 문화창고

사람들은 이런 곳만 들려보고 정작 이 마을의 이야기는 모르고 돌아갑니다.

주민들도 하나둘 떠났고 마을에는 더 아이들의 울음을 들을 수가 없는 마을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마을 안에 하나둘 늘어나는 빈집 마당엔 잡초만이 무성하고 담벼락으로 자라는 나무만이

긴 겨울을 지나 다시금 푸른 옷을 입고 익숙하게 아침을 맞지만 부서진 방문 너머로는

인기척이 없습니다.

장생포

하늘 아래 첫 산

천지먼당

자장가를 들려주는 파도 소리길

지금도 저 멀리서 뿌웅 하고 뱃고동 소리가 들릴 것 같은 바다…….

얼마나 많은 발길이 지나다녔는지 천지먼당을 가로지르는 길에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고 있습니다.

장생포에 사라졌던 고래들이 돌아와 고래 유람선이 생겨났습니다.

이곳 장생포의 마을 골목골목 마다에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돌아왔으면….

지금도 소금 바람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이곳 천지먼당의 풀숲을 감아 돕니다.

(옛길에서 올려다본 천지먼당)
(문화 창고 지관서가에서 바라보는 장생포항)
(장생포 앞바다와 멀리보이는 염포산모습)
(장생포 옛길의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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